
무치노 감독전으로 다시 걸린 출세작
이번 상영은 단독 재개봉이 아니라 감독전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습니다. CGV아트하우스는 8월 19일부터 2주간 전국 7개 극장에서 가브리엘레 무치노 감독전을 진행합니다. 무치노 감독은 윌 스미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행복을 찾아서'를 연출한 인물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이름입니다. 가족과 인간관계, 그리고 삶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오랜 시간 파고들어 온 감독입니다. 이번 특별전은 그의 신작 '말하지 않은 것들'이 9월 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상영작은 감독이 할리우드로 건너가기 전 이탈리아에서 만든 세 편입니다. 2001년작 '라스트 키스'를 비롯해 '리멤버 미'와 '키스 미 어게인'이 함께 걸립니다. 세 작품 모두 남녀 관계와 가족을 중심에 두고 서로 다른 세대의 삶과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라스트 키스'는 무치노 감독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출세작에 해당합니다. 2010년작 '키스 미 어게인'이 이 작품의 후속편이라는 점도 함께 알아 두면 좋습니다. 2001년 이탈리아에서 공개된 이후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작품이 다루는 감정은 크게 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결혼과 정착을 앞두고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 더 폭넓게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감독의 신작을 보기 전에 그의 출발점을 먼저 확인해 보고 싶은 관객에게 알맞은 기회입니다. 세 편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감독의 관심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서른을 앞두고 흔들리는 사람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서른을 한 달 앞둔 남자 카를로가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동거해 온 연인 줄리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줄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는 기쁨보다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연인의 바람이 그에게는 도망치고 싶은 압박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사람은 카를로만이 아닙니다. 줄리아의 어머니 안나는 30년에 이르는 결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딸의 젊음을 부러워합니다. 카를로의 세 친구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한 채 탈출을 꿈꿉니다. 아드리아노는 결혼 후 달라진 아내와의 일상에 지쳐 있고, 파올로는 가업을 잇는 대신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을 동경합니다. 알베르토는 아예 정착 자체를 거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카를로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열여덟 살 프란체스카에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예상치 못한 계기로 줄리아에게 들통이 나고, 모든 인물의 삶이 한꺼번에 흔들리게 됩니다. 카를로 역은 스테파노 아코르시가, 줄리아 역은 조반나 메초조르노가 맡아 팽팽한 감정선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 스테파니아 산드렐리가 어머니 안나 역으로 무게를 더합니다.
25년이 지나도 낡지 않은 이야기
이 작품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인물 누구도 쉽게 미워할 수 없게 그려졌다는 점에 있습니다. 카를로의 선택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영화는 그를 단순한 배신자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른이 된다는 일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들여다봅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동시에 굴러가는 군상극 구조를 택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러닝타임은 1시간 58분으로 짧지 않지만, 인물이 많은 만큼 흐름은 빠르게 이어집니다. 이탈리아 특유의 빠른 대사와 소란스러운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면 초반이 다소 정신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리듬에 적응하고 나면 인물들의 민낯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감독전 형식으로 상영되는 만큼 회차와 극장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감안하셔야 합니다. 전국 7개 CGV아트하우스에서만 2주간 진행되는 일정입니다. 예매 전에 상영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두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후속편인 '키스 미 어게인'까지 이어서 관람한다면 인물들의 10년 뒤를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유럽 멜로 특유의 정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상영입니다. 이번 특별전이 아니었다면 국내 극장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웠을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봉 당시 이탈리아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