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을 찾아서> 감독이 소설 '시라쿠사'를 옮기다
가브리엘레 무치노 감독의 신작 <말하지 않은 것들>이 2026년 9월 2일 국내 극장에서 정식 개봉했습니다.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LE COSE NON DETTE', 영어 제목은 'THE THINGS WE DON'T SAY'이며, 델리아 에프론이 발표한 소설 '시라쿠사'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원작자인 델리아 에프론이 무치노 감독과 함께 직접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소설이 지닌 심리적 밀도가 스크린 위에서도 크게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치노 감독은 1967년 로마에서 태어나 <라스트 키스>로 자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고,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윌 스미스와 함께 <행복을 찾아서>와 <세븐 파운즈>를 연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인간과 가족 관계의 복잡한 결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그의 오랜 특기인데, 열여덟 번째 장편에 해당하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 장기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해 지중해 건너 모로코 탕헤르까지 무대를 확장하면서 시각적인 밀도까지 함께 끌어올렸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최근 국내 극장가가 규모가 큰 상업 액션물 위주로 채워져 있던 상황이라, 이렇게 인물의 심리를 촘촘하게 따라가는 유럽 드라마가 같은 날 나란히 개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봉에 앞서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의 후원으로 프리미어 시사회가 열렸을 만큼 국내에서도 나름의 기대를 받아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탕헤르로 떠난 두 부부, 침묵이 만든 균열
이야기의 출발점은 지극히 평범한 여름 휴가입니다. 대학교수인 카를로와 기자인 엘리사 부부는 안나와 파올로 부부, 그리고 그들의 딸 비토리아와 함께 모로코 탕헤르로 여행을 떠납니다. 낯설고 따뜻하며 고요하기까지 한 이국의 풍경 속에서 네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영화의 핵심은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니라, 끝내 발화되지 못한 채 각자의 안에 고여 있던 감정들입니다. 오랜 세월 쌓인 침묵과 은폐,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미묘한 기대와 질투가 여행이라는 폐쇄된 조건 아래에서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특히 아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어른들이 무엇을 말하지 않기로 선택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상당히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출연진은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신뢰도가 높은 배우들로 채워졌습니다. 스테파노 아코르시와 미리암 레오네, 클라우디오 산타마리아, 카롤리나 크레센티니가 두 부부를 맡아 팽팽한 앙상블을 완성합니다. 네 배우 모두 큰 동작 없이 시선의 방향과 호흡의 길이만으로 감정의 낙차를 만들어내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인물 수가 적지 않음에도 각자의 지분이 고르게 배분되어 있어 누구 한 사람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촬영과 음악을 비롯한 주요 스태프 역시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른바 무치노 사단이 대거 합류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114분 청소년관람불가, 관람 전 체크 포인트
관람 정보를 정리하자면 상영타입은 2D 자막이며, 러닝타임은 114분입니다. 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로 책정되어 있는데, 관계의 파국과 어른들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인 만큼 수위 있는 묘사와 무거운 정서가 포함되어 있는 탓입니다. 가족 단위 관람보다는 성인 관객이 혼자 혹은 동반자와 함께 조용히 몰입하기에 적합한 영화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1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결코 짧지 않지만, 인물들의 감정이 축적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초반 삼십 분 정도는 사건다운 사건 없이 인물들의 관계를 쌓아 올리는 데 할애되므로, 빠른 전개를 기대하고 들어가시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대사가 많고 그 안에 담긴 뉘앙스가 중요한 작품이라 자막 상영이라는 점을 감안해 화면과 자막을 함께 볼 수 있는 중앙 좌석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오리지널 주제가는 2026년 나스트로 다르젠토 최우수 오리지널 주제가상을 수상했을 만큼 완성도가 높으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바로 자리를 뜨지 마시고 음악까지 함께 들으시길 권합니다. 관람을 마친 뒤에는 인물들의 선택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여운이 꽤 길게 남았습니다. 자극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을 응시하는 드라마를 선호하시는 분들께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