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는 내내 너무 맵다고 하면서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는 독자 후기가 쏟아진 화제의 만화가 있습니다. 인스타툰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남디디의 『내일도 흔들릴 나에게』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펀딩 6,000% 달성, 인스타툰에서 640쪽의 책으로
『내일도 흔들릴 나에게』는 '남디디의 코딱지툰'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며 조회수가 급상승했던 화제의 인스타 연애툰을 몰입감 있게 엮어 2025년 4월 아르테에서 펴낸 단행본입니다. 출간 전 진행된 알라딘 북펀드에서 목표 금액의 6,000퍼센트를 달성했을 만큼 독자들의 기다림이 뜨거웠고, 단행본에만 수록된 에필로그까지 더해 640쪽의 묵직한 한 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프롤로그에 이어 먼지, 점성, 알러지, 코딱지라는 독특한 제목의 4개 장이 이어지는데,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들의 이름을 빌린 이 목차부터가 작품의 정서를 잘 보여 줍니다. 작가 남디디는 일상에서 숱하게 마주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스스로의 모습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소년만화 같은 판타지는 없지만 삶의 여러 단면을 솔직하게 담아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어른만화를 그리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예쁘게 포장된 연애담이 아니라 관계의 민낯을 정면으로 그려 낸 작품입니다. 본업이 영상편집자인 작가답게 연출 감각도 남다른데, 그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두께에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번 펼치면 순식간에 마지막 장에 도착해 있을 테니 말입니다. 연재 당시 조각조각 아껴 보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단행본으로 만나는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불안형 디디와 회피형 유진, 구원 없는 사랑의 민낯
주인공 디디는 부모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며 자랐고, 애인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폭력을 겪어 온 인물입니다. 만성적인 결핍과 불안 때문에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디디는 자신이 와해되었을 때 유진을 만나게 됩니다. 유진은 디디가 폭력에서 벗어날 용기를 주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구원 서사 같지만,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완전한 구원은 없는 법이어서, 디디는 여전히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진은 그로 인한 갈등을 회피합니다. 불안형과 회피형이라는 상극의 애착이 만나 서로를 아프게 하는 과정이 숨 막히는 몰입감으로 펼쳐집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만큼 디디의 감정은 세세하고 생생합니다. 폭력을 가한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그래서 더 애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 잘못을 의심하면서도 그 모습을 마주하기 싫어 무시해 버리는 합리화까지, 모순되고 불완전해서 오히려 우리와 닮은 인물들이 그려집니다. 댓글창에는 회피형 유진에게서 옛 연인을 떠올리는 사람부터 디디를 보고 자신의 이별 이유를 깨달았다는 사람까지 공감과 반성이 뒤섞였는데, 저 역시 처음에는 등장인물을 탓하며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독서였습니다. 과연 두 사람은 사랑할 수 있을지, 디디는 성장할 수 있을지, 그 답은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흔들릴 나 자신에게
이 작품의 연출은 감정을 이미지로 번역해 내는 데 탁월합니다. 불안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답답함은 거미줄에 얽힌 채 추는 춤으로, 무도한 말을 쏟아내는 부모는 거대한 그림자 괴물로 그려집니다. 영상편집자라는 본업이 무색하지 않은 이 감각적인 장면들 덕분에 독자는 디디의 마음속 풍경을 머리가 아니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물론 디디와 유진의 경험과 갈등은 주인공이기에 극단적이고 일부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부분에서는 누구나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너무 힘든 시간을 지나온 탓에 당연한 호의도 과분하게 여기게 되는 마음, 뒤처진 자신이 못나서 견딜 수 없는 마음, 낮아진 자존감으로 관계에서 스스로 을이 되어 버리는 마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응원은 결국 어제도 흔들렸고 오늘도 흔들리고 내일도 흔들릴 나 자신에게 건네는 응원이 됩니다. 제목이 완성되는 이 지점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울림이었습니다. 연애가 자꾸 같은 방식으로 어긋나는 분, 불안과 회피 사이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은 분, 그리고 흔들리는 것이 곧 실패는 아니라는 말이 필요한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다만 가정 폭력과 정서적 학대 묘사가 생생한 만큼,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펼치시기를 권합니다. 맵지만, 끝내 따뜻한 책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흔들릴 우리 모두가, 그럼에도 각자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