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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 정세랑, 혼란을 끌어안는 쓰기에 대하여

by 사리이 2026. 7. 9.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피프티 피플』과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 정세랑이 5년 만에 산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한 초대장 같은 책,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작가, 5년 만의 산문집

정세랑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0년 『판타스틱』에 단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입니다.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지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성들에게 바치는 『시선으로부터,』와 역사 추리물인 설자은 시리즈까지,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의 영토를 종횡무진해 온 그는 명랑하고 다정한 상상력으로 두터운 독자층을 지닌 작가입니다. 저 역시 책태기가 올 때마다 다시 집어 드는 작가가 정세랑이었기에,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이후 5년 만에 마음산책에서 나온 이번 산문집을 주저 없이 펼쳤습니다. '혼란을 끌어안는 쓰기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글쓰기를 다루지만 단순한 작법서는 아닙니다. 작가 스스로 발걸음을 떼기 전인 창작자의 등을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밀어 주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듯이,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쓰고 싶은 마음에 불을 붙여 주는 책에 가깝습니다. 등단 이후 십수 년간 성실하게 쓰고 사랑받아 온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 문을 활짝 열어 보여 주는 듯한, 귀한 기록이었습니다. 단정한 양장본으로 만들어져 책장에 꽂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에도 좋은 판형이라는 점도 반가웠습니다.

 

창작의 신화를 걷어내면 즐거움이 남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창작을 둘러싼 오래된 신화와 편견을 유쾌하게 걷어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창작을 고통스러운 산고에 비유하고,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시작조차 말아야 하는 일처럼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정세랑은 창작이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창작자가 되어 불행하다고, 저주받았다고 투덜대는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면 사실은 재미있으면서 거짓말을 한다고 속으로 놀려 주자는 대목에서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습니다. 재능에 대한 강박, 완벽한 첫 문장에 대한 부담, 매일 쓰지 못하는 죄책감처럼 쓰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마음들을 하나하나 가볍게 만들어 주는 솜씨가 과연 정세랑답습니다. 문학과 잘 맞는 사람에 대한 정의도 인상 깊었습니다. 웬만해서는 단정 짓지 않는 사람, 빠르고 거친 요약을 내켜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문학과 잘 맞을 확률이 높으며, 마음껏 느릿느릿해질 자유가 문학에 있으니 초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요약되고 소비되는 시대에, 혼란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고 끌어안은 채 천천히 쓰는 일의 가치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변호하는 글을 저는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무언가 쓰고 싶어지는, 이상한 전염력이 있는 책입니다. 소설가가 쓰는 글쓰기 책 특유의 조심스러움 대신, 후배 창작자들의 손을 잡아끄는 명랑한 확신이 가득하다는 점에서도 흔치 않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와 독자, 연결되지 않아서 연결되는 사이

제목이 말해 주듯 이 책의 또 다른 축은 독자입니다. 작가에게 독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화 상대라는 전제 아래, 정세랑은 독자들과 얽힌 일화들을 특유의 유머로 풀어놓습니다. 수상할 정도로 양말 선물을 많이 받게 된 사연이라든가, 독자를 울리는 일이 잦다는 고백 같은 이야기들은 읽는 것만으로 흐뭇해집니다. 작가와 독자의 연결감은 역설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데서 온다는 통찰도 곱씹을수록 깊습니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채 책이라는 매개로만 이어져 있기에 그 관계가 오히려 순수하고 단단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와 대면 행사 등 집필 외 활동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룬 글에서, 쓰는 사람은 쓰는 일에 매진해도 좋고 노출을 줄여 적막한 곳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해 주는 대목은 창작자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인용은 결코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글처럼 실무적인 통찰이 담긴 글들도 알차게 들어 있습니다. 무언가 쓰고 싶지만 시작하지 못한 분들, 쓰다가 지쳐 버린 분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들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제목의 저 다정한 문장을, 정세랑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질 것입니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는 작가의 믿음처럼, 이 책이 여러분을 읽는 자리에서 쓰는 자리로 슬쩍 옮겨 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무언가를 쓰게 된다면, 기꺼이 당신의 독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