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는 책이 아니라 묻는 책, 그리고 엄마가 직접 완성하는 책이 있습니다. 전 세계 수백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 엘마 판 플리트의 『마더북』을 소개하며, 이 특별한 책이 지닌 의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엄마를 잃을 뻔한 딸이 만든, 세상에 없던 책
『마더북』의 시작에는 한 딸의 절박한 마음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사는 엘마 판 플리트는 광고홍보회사에 다니며 바쁘지만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2001년 어머니가 갑자기 큰 병을 앓게 되면서 그녀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머니란 필요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떠올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크고 작은 꿈을 꾸었는지,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물음들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엘마는 직접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2005년 네덜란드에서 『마더북』이 태어났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질문을 건네는 책은 당시 출판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이 진심 어린 발명품은 이후 전 세계 15개국에 소개되어 400만 부가 판매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의 임프린트 반비가 2019년에 펴냈는데, 엘마 팀과의 면밀한 소통 속에 원서의 보편적인 가치는 지키면서도 한국의 문화와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해 질문들을 세심하게 다듬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오래 간직하며 쓰기 좋도록 튼튼한 양장으로 만들어진 240쪽의 판형도, 이 책이 단순한 도서가 아니라 하나의 선물로 기획되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선물하고, 기록하고, 되돌려받는 세 가지 규칙
이 책의 사용법은 독특합니다. 먼저 자녀가 이 책을 사서 어머니에게 선물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책 속의 질문들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그리고 다 쓴 책을 반드시 다시 자녀에게 돌려줍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이 세 가지 규칙은 사실 모두 치밀하게 고안된 장치입니다. 자녀의 선물은 당신의 삶이 궁금하다는 마음의 표현이 되어 어머니에게 글을 쓸 동기를 부여하고, 자녀에게 되돌려주는 마지막 절차는 이 귀한 사적 기록이 다음 세대까지 오래 이어지도록 만들어 줍니다. 책장을 채우는 질문들은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 사랑과 결혼, 그리고 지금의 마음까지 한 사람의 생애를 찬찬히 따라갑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늘 듣던 하소연에 질려 엄마의 삶을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옛날이야기를 지겹다고 흘려듣지는 않았는지 이 책은 조용히 돌아보게 만듭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온갖 어려움을 헤치며 살아온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공식적인 역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마더북』은 바로 그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가족의 손으로 직접 남기게 하는, 가장 작고도 위대한 사관의 역할을 해 주는 책입니다. 질문에 답을 적는 사람은 어머니이지만, 완성된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배우게 되는 사람은 결국 자녀 자신이라는 점이 이 책의 묘미입니다.
자서전보다 쉽고 인터뷰보다 따뜻한 기록
엄마의 인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막상 자서전을 쓰시라고 권하기도,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마더북』의 미덕은 바로 그 문턱을 낮춰 준다는 데 있습니다. 잘 짜인 질문이 길잡이가 되어 주니 글쓰기가 막막한 어머니도 한 칸씩 부담 없이 채워 갈 수 있고, 일과 육아로 바쁜 자녀도 책 한 권을 건네는 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엄마와 사이가 서먹한 사람들에게도 권할 만합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는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지면 위에서는 한결 담담하게 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완성된 책을 돌려받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손글씨로 채워진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 사람의 여자이자 소녀였던 엄마의 인생이 비로소 온전한 이야기로 다가오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 가보처럼 남게 됩니다. 어버이날이나 생신, 혹은 아무 날도 아닌 어느 날에라도, 사랑한다는 말 대신 건네기에 이보다 좋은 선물은 드물 것입니다. 엄마가 곁에 계실 때 물어야 할 것들을 더는 미루지 말라고,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우리를 재촉합니다. 후회가 되기 전에, 올해는 꼭 엄마의 이야기를 선물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은 어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모든 사적인 관계를 기록하고 나누는 일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이 한 권이 여러분 가족의 대화를 다시 잇는 첫 페이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엄마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지, 이 책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