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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바둑계라는 창으로 내다본 AI 이후의 세계

by 사리이 2026. 7. 16.

먼저 온 미래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하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해, 이미 그 미래를 통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장강명의 르포르타주 『먼저 온 미래』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 바둑계를 취재하다

저자 장강명은 신문기자로 일하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재수사』 같은 소설과 『당선, 합격, 계급』 같은 논픽션을 오가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온 저널리스트-작가입니다. 2025년 6월 동아시아에서 펴낸 『먼저 온 미래』는 그런 그의 문제의식이 응축된 368쪽의 르포르타주입니다. 부제는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가 주목한 세계는 뜻밖에도 바둑계입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잠시 놀라고 지나갈 해프닝이었지만, 바둑인들에게는 세계가 통째로 뒤집히는 지진이었습니다. 장강명은 조훈현, 유창혁, 박정상, 김지석, 신진서 등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인공지능이 한 분야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생생하게 채록했습니다. 미래는 모든 분야에 같은 속도로 오지 않는다는 통찰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바둑계에 먼저 도착한 그 미래를 거울삼아, 문학을 비롯한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해 보려는 것입니다. 소설가이자 기자로서 인간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데 능한 저자답게, 통계나 전망 대신 사람의 목소리로 미래를 그려 낸다는 점이 이 책을 여느 AI 담론서와 다르게 만듭니다.

 

예술이 무너졌다, 바둑인들의 증언

이 책에서 가장 서늘한 것은 바둑인들의 육성입니다. 알파고 이전까지 바둑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인간 지성과 예술의 정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기 시작하면서,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도, 관전하는 문화도,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도 모두 달라졌습니다. 내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는 어느 기사의 고백은, 곧 들이닥칠 미래를 앞둔 우리에게 소름이 돋게 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해설자의 처지가 변한 대목입니다. 이제 바둑 팬들이 해설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의 견해가 아니라 AI 추천수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수십 년 쌓아 온 전문가의 자부심이 인공지능의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는 순간이, 이 책에는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강명은 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진보라는 대의 앞에서 전문가의 자부심은 사소한 가치일까, 인공지능의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더라도 급여만 주어지면 괜찮은 것일까 하는 물음입니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쏟아 낼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될까를 묻는 대목에 이르면,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바둑이라는 구체적인 세계를 통해 이야기하기에, 추상적인 AI 공포론보다 훨씬 손에 잡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었습니다.

 

부서진 뒤에야 알아차리게 될 가치들

이 책의 핵심 경고는 명료합니다.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은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고 일과 경험을 변질시키며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것이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장강명은 AI 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낙관론을 향해서도, 그 일자리가 사회적 가치와 자부심의 원천인지 아니면 그저 급여를 받는 이유에 불과한지를 집요하게 되묻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비관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신약 임상시험처럼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 제도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국제원자력기구나 기후위기 대응 조약처럼 국경을 뛰어넘는 대응을 주문합니다. 나아가 빅테크가 말하는 납작한 의미의 좋은 삶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믿고 상상하는 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런 상상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처럼 흡입력 있게 읽히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책이니, AI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직업인에게, 그리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품고 살아온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먼저 온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는 일은,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분야에는 그 미래가 언제쯤 도착할지, 이 책과 함께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