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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사랑과 고독 사이에서 던지는 질문

by 사리이 2026. 7. 8.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한 통의 짧은 편지 속 질문이 소설의 제목이 된 작품,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었습니다. 60년이 넘은 소설인데도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의 풍경만큼은 조금도 낡지 않았기에, 그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매혹적인 작은 괴물,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수아즈 사강은 193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쓴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으로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된 인물입니다. 당시 평단은 이 겁 없는 신예에게 매혹적인 작은 괴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빠른 차와 도박과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도 유명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강이 스물네 살이던 195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사랑의 설렘보다 사랑의 권태와 고독을 그리는 데 천재적이었던 그의 재능이 가장 원숙하게 빛나는 소설로 꼽힙니다. 제목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가 붙어 있다는 점입니다. 가벼운 취향을 묻는 질문 같지만 그 뒤에 차마 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길게 이어지고 있음을, 저 세 개의 점이 조용히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남주 번역가가 옮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오래 사랑받아 왔고, 같은 제목을 빌린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다시 한번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짧은 분량 안에 사랑의 본질을 눌러 담은, 사강 입문작으로도 손색없는 책입니다. 발표 이듬해에는 잉그리드 버그먼과 이브 몽탕, 앤서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만큼, 출간 당시부터 시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었습니다. 문장은 건조한 듯 우아하고, 심리 묘사는 서늘할 만큼 정확해서 사강이 왜 프랑스 문단의 총아였는지를 이 한 권으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폴과 로제, 그리고 시몽, 세 사람의 마음의 지도

주인공 폴은 파리에서 실내장식가로 일하는 서른아홉 살의 여성입니다. 그녀에게는 육 년째 만나 온 연인 로제가 있습니다. 로제는 폴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남자입니다. 저녁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미루고, 젊은 여자들과의 하룻밤을 즐기며, 폴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리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폴은 그런 로제를 기다리는 데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며 무뎌진 외로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 그녀 앞에 스물다섯 살의 젊은 변호사 시몽이 나타납니다. 일 때문에 만난 폴에게 첫눈에 반한 시몽은 머뭇거림 없이 마음을 표현하고, 어느 날 그녀에게 짧은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여섯 시에 좋은 연주회가 있는데, 브람스를 좋아하시느냐고 말입니다. 이 순진한 초대장 앞에서 폴은 문득 깨닫습니다.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조차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로제에게 맞추어 사는 동안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폴은 헌신적인 젊은 연인 시몽과 익숙한 이기주의자 로제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통속적인 삼각관계처럼 보이지만, 사강은 세 사람 누구도 악인으로 그리지 않으면서 사랑에 빠진 인간의 연약함을 집요하리만큼 섬세하게 해부해 냅니다. 로제의 무심함에도, 시몽의 조급함에도, 폴의 망설임에도 저마다의 진심이 있어서, 읽는 내내 누구 하나를 쉽게 미워할 수 없었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좋아하세요, 라는 물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은 결국 취향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 말고 다른 것을 사랑할 여유가 아직 남아 있느냐는 물음이며, 나아가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폴은 이 질문 앞에서 잊고 지내던 자신을 되돌아보지만, 소설은 그녀에게 쉬운 해피엔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랑이 주는 눈부심보다 익숙한 관계의 중력이 얼마나 힘이 센지를, 사강은 냉정할 만큼 담담하게 보여 줍니다.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한 인물이 상대에게 고독이라는 형벌을 선고하듯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이 소설이 사랑 이야기이자 고독에 관한 이야기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랑을 스쳐 보내는 것도 결국 인간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젊은 날에 읽으면 시몽의 마음으로, 나이 들어 읽으면 폴의 마음으로 읽게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이 소설은 읽는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안정과 설렘 사이에서 고민해 본 적이 있는 분, 관계에 길들여져 나를 잃어 가는 기분을 아는 분이라면 깊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짧지만 여운은 결코 짧지 않은 소설이니, 조용한 밤에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을 틀어 놓고 천천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폴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두고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브람스를 좋아하시는지, 그리고 지금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계신지 이 책과 함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