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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빛을 먹는 존재들 - 조이 슐랭거, 식물은 생각한다

by 사리이 2026. 7. 29.

빛을 먹는 존재들

 

식물은 그저 가만히 있는 수동적인 존재일까요. 최신 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식물 지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하는 조이 슐랭거의 『빛을 먹는 존재들』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후위기 기사에 지친 기자가 식물에서 찾은 것

저자 조이 슐랭거는 새로운 세대를 이끌 과학 저널리스트로 주목받는 미국의 작가입니다. 이 책이 탄생한 계기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환경 전문기자로 일하던 그는 반복되는 기후위기 기사에 지쳐, 경이롭고 생동하는 느낌이 드는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그때 그의 마음을 위로한 것이 바로 식물이었습니다. 점심시간마다 식물 관련 논문을 읽던 그는 최근 식물학계에서 식물 지능을 둘러싼 혁명적 발견과 격렬한 논쟁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난해한 학문의 영역에만 갇혀 있기에는 너무 좋은 이야깃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결국 그는 2019년 다니던 언론사에 사표까지 내고 이 분야의 최신 연구를 섭렵하는 데 매달렸습니다. 그 결실인 이 책은 2024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타임의 2024년 필독서 100권과 10대 논픽션에 선정되었고,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손꼽히며 20여 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는 2025년 생각의힘에서 정지인 번역가의 손을 거쳐 464쪽 분량으로 나왔습니다. 학자가 아니라 경이로움을 좇던 기자가 쓴 책이라는 점이, 이 방대한 과학서를 시종 흥미롭게 읽히도록 만드는 힘입니다.

 

보고, 듣고, 선택하고, 계략을 꾸미는 식물들

이 책이 뒤엎는 것은 식물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통념입니다. 우리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상태를 식물인간이나 식물 국회처럼 식물에 빗대곤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모두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말합니다. 지난 10년에서 20년 사이 첨단 영상기술과 생리학, 신경생물학,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식물만의 감각 체계가 폭발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식물은 대상을 보고, 소리를 듣고, 촉각을 감지하며,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 심지어 계략을 꾸미기까지 합니다. 포식자가 가까이 오면 여러 화합물을 분비해 서로에게 위험을 알리고, 위험을 감내하며, 경험을 공유하고, 대지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대물림합니다. 뿌리 아래에서 균류와 연결되는 균근 네트워크부터, 1억 5천만 킬로미터의 우주를 가로질러 온 빛을 먹고 숨을 뱉는 잎끝까지, 저자는 세계 곳곳의 실험실과 숲을 오가며 식물이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 냅니다. 한 그루의 식물만이 아니라 때로는 한 군락이, 나아가 숲 전체가 하나의 지능처럼 작동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절로 경외감이 듭니다.

 

식물 지능이라는 뜨거운 논쟁의 한복판에서

이 책이 단순한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는 것은, 저자가 식물 지능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학계의 격렬한 논쟁까지 균형 있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능이라는 단어를 식물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를 두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느 한쪽의 손을 성급하게 들어 주는 대신, 인간의 생물학과 은유를 벗어나 식물을 그 자체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려 애씁니다. 식물의 새로운 본성에 비춰 볼 때 식물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믿음을 고집스레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문제 제기는, 지능과 생명의 경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만 464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전문적인 과학 내용이 곳곳에 등장해,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신이 아득해지고 세계가 확장되는 듯한 독서 경험을 원하는 분이라면, 그 밀도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는 예전과 같은 눈으로 식물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초록의 세계를 새롭게 만나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 곁의 화분 속 식물이 지금 무엇을 감지하고 있을지, 이 책과 함께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