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책 추천 | 사계절을 품은 산책, 경춘선 숲길 이야기 — 한 사람이 같은 길을 사계절 걸으면 생기는 일

by 사리이 2026. 7. 11.

사계절을 품은 산책, 경춘선 숲길 이야기

 

매일 걷는 동네 길도 누군가의 시선을 거치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이용근 저자가 서울 경춘선 숲길의 사계절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사계절을 품은 산책 경춘선 숲길 이야기』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진과 감성으로 기록한 내 마음의 풍경

이 책은 2026년 2월 교보문고의 자가출판 브랜드 퍼플에서 POD 방식으로 출간된 사진 에세이입니다. 부제는 '사진과 감성으로 기록한 내 마음의 풍경'으로, 저자 이용근이 경춘선 숲길을 거닐며 직접 찍은 사진들과 그 순간의 단상을 함께 엮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인쇄해 배송하는 POD 도서는 대형 출판사의 기획을 거치지 않은, 한 사람의 순수한 기록이 책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데가 있습니다. 화려한 마케팅 없이도 이 책에는 힐링된다는 독자 리뷰가 잇따르며 만점에 가까운 평점이 쌓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책장을 몇 장만 넘겨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만들겠다는 계산 대신, 좋아하는 길을 오래 걸은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애정이 사진마다 문장마다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길이라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표정이 어떻게 다른지,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보는 눈은 하루 이틀 걷는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경춘선 숲길의 안내서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 한 장소를 꾸준히 사랑한 시간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거창한 여행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집 가까운 산책길을 이토록 정성껏 기록한 책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잔잔한 감동이었습니다. 330쪽 분량에 부담 없는 가격이라, 산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가볍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기차가 떠난 자리에 숲이 왔다, 경춘선 숲길

이 책을 더 깊이 즐기려면 무대가 되는 경춘선 숲길의 내력을 알아 두면 좋습니다. 경춘선은 1939년에 개통해 서울과 춘천을 잇던 철도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춘천의 상인과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부설한, 우리 민족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사설 철도라는 뜻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MT와 첫 데이트의 설렘을 실어 나르며 청춘의 상징이 되었던 이 철길은 2010년 복선 전철 개통과 함께 서울 구간의 운행을 멈추었고, 방치되던 폐선 부지는 도시재생 사업을 거쳐 약 6킬로미터의 선형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선로를 걷어 내는 대신 원형 그대로 살려 둔 덕분에, 지금도 녹슨 철길 옆으로 미루나무와 잣나무가 자라고 들꽃이 피어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중랑천을 건너는 경춘철교, 카페가 늘어서 공트럴파크라 불리는 공릉동 구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도깨비시장, 그리고 근대 간이역의 모습을 간직한 옛 화랑대역과 불빛정원까지, 구간마다 표정이 달라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2020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으니, 기차의 추억과 숲의 계절이 겹쳐 흐르는 이 길이야말로 사계절 기록의 무대로 더없이 알맞은 곳이라 하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길을 걸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철길의 침목 하나, 벽화 한 점에도 이야기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니, 산책의 밀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계절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이 책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산책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흔히 계절을 느끼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봄에는 벚꽃 명소로, 가을에는 단풍 명산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같은 길을 철마다 걷는 것만으로도 계절의 흐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음을 사진으로 증명해 보입니다. 봄의 연둣빛 새순과 여름의 짙은 그늘, 가을의 물든 잎과 겨울의 고요한 철길이 한 권 안에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계절이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목의 '내 마음의 풍경'이라는 표현처럼, 결국 같은 풍경도 그날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니, 이 책은 길의 기록인 동시에 걷는 사람의 마음 일기이기도 합니다. 읽고 나면 두 가지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는 당장 경춘선 숲길을 걸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나도 내 동네의 길 하나를 정해 사계절을 기록해 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니, 이 책을 그 첫걸음의 자극제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경춘선 숲길 산책을 계획하는 분들, 동네 산책의 재미를 새로 발견하고 싶은 분들, 그리고 언젠가 자기만의 책을 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소박하고 다정한 책을 권합니다. 소파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한 해 치 산책을 다녀온 듯한, 시원한 바람 같은 독서였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동네에서 사계절을 기록하고 싶은 길은 어디인지, 이 책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