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시장에 있었는데도 누군가의 돈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돈은 불어납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여의도 제갈량'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 김효진의 신간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의도 제갈량, 16년 차 애널리스트 김효진
저자 김효진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활동하는 이코노미스트입니다. 원래는 시사교양 PD를 꿈꿨지만 어쩌다 입사한 증권사에서 16년 넘게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이 담백한 자기소개에서 이미 그의 성향이 드러납니다. 경제 자체를 좋아하고, 경제가 어떻게 금융시장과 우리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파고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의도 제갈량이라는 별명은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그의 통찰에 붙은 찬사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각종 경제 채널과 유튜브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며 어려운 거시경제를 일반 투자자의 언어로 풀어내 왔습니다. 최근 방송에서 그는 버블이 무너질 때마다 반복되어 온 공통된 신호가 있다고 짚으면서도, 지금 시장을 단순히 버블이라고만 규정하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균형 잡힌 시선이 그의 강점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랠리, 코스피의 폭등과 폭락을 두고 지금이 고점인가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는 시기에, 그가 내놓은 신간이 바로 『사라지는 돈, 살아남는 돈, 불어나는 돈』입니다. 시장이 뜨거울수록 차분한 목소리가 필요한 법인데, 이 책이 딱 그런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매수와 매도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래 시장을 지켜본 사람의 담담한 관점을 한 권으로 정리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돈, 제목이 곧 이 책의 목차입니다
이 책의 미덕은 제목이 곧 주제를 명확히 보여 준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돈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돈, 살아남는 돈, 그리고 불어나는 돈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떻게 하면 돈을 불릴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구분은 그 앞에 두 단계가 더 있음을 일깨웁니다. 먼저 사라지는 돈을 알아보아야 하고, 그다음 살아남는 돈을 지켜야 하며, 불어나는 돈은 그 뒤에 오는 문제라는 순서 말입니다. 실제로 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큰 자산을 잃은 사람들은 대체로 불리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라지는 돈을 사라지는 줄 모르고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인플레이션에 잠식되는 현금, 구조적으로 쇠퇴하는 산업, 버블의 끝자락에서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자산이 모두 그런 사례일 것입니다. 저자가 방송에서 강조해 온 고점의 신호와 변동성 장세에서 내 돈을 지키는 법 역시 이 책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화폐가 대량으로 풀리고 자산 가격이 요동치며 국가 부채와 환율까지 흔들리는 지금, 내 돈이 셋 중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의 구도는 무척 실용적입니다. 막연히 열심히 모으고 열심히 투자하는 것을 넘어, 내 자산의 성격 자체를 분류해 보게 만드는 틀을 얻는 것만으로도 읽을 값어치가 충분합니다. 세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이 곧 하나의 사고 도구가 되어 주는 셈입니다.
예측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얻는 독서
투자서를 읽을 때 우리는 은근히 정답을 기대합니다. 무엇을 언제 사면 되는지 알려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16년 넘게 시장을 관찰해 온 애널리스트가 내놓는 책은 대체로 그런 종류의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판단의 기준을 줍니다. 지금이 사이클의 어디쯤인지, 어떤 신호가 나타날 때 경계해야 하는지, 무엇이 구조적 변화이고 무엇이 일시적 소음인지를 구분하는 눈 말입니다. 저자가 강세장의 역사를 되짚으며 시장이 무너질 때마다 반복된 공통점을 설명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남이 찍어 주는 종목을 따라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사라지면 길을 잃지만, 판단의 기준을 가진 사람은 어떤 국면에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시경제를 다루는 책인 만큼 당장 수익을 내는 실전 매매 기법을 기대하는 분에게는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어떤 전문가의 전망이든 그대로 미래가 되지는 않으니, 이 책 역시 참고 자료로 삼되 최종 판단과 책임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시장의 소음에 흔들리는 분들, 거시경제의 큰 그림을 잡고 싶은 분들, 그리고 돈을 불리기에 앞서 지키는 법부터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결국 가장 확실하게 불어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조급함이 앞설수록 이런 책을 곁에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돈은 사라지는 중인지, 살아남는 중인지, 불어나는 중인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