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뒤집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의 신작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뼛속까지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저자 김상욱은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자 양자물리학자로, tvN 『알쓸신잡』 시리즈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과학자입니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떨림과 울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등으로 어려운 물리학을 인문학의 언어로 옮겨 온 그는, 세간에서 흔히 다정한 물리학자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번 책을 읽고 나면 그 표현보다는 뼛속까지 물리학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궁극적인 진리와 변치 않을 원리를 찾으려는 태도, 곧 격물치지의 자세가 책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2026년 6월 동아시아에서 펴낸 이 책은 주간지 시사IN에 연재한 칼럼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를 뼈대로 삼고,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의 '김상욱의 우문현답'에 실었던 글 몇 편을 더해 수정하고 보강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던 전작들과 달리 다루는 영역이 무척 광범위한데, 어떤 서평자는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을 넘어 세상 전체를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조망하려는 야심이 담긴 책이라 하겠습니다. 물리학은 몰라도 물리학자의 태도는 조금 알 것 같다는 어느 기자의 표현처럼, 이 책을 읽는 일은 지식을 얻는 것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를 배우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에 주목하라
이 책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실리콘밸리의 두 인물입니다. 인텔과 AMD의 부사장을 지내고 애플과 테슬라에서 중책을 맡았던 전설적인 엔지니어 짐 켈러는 몇 년 뒤면 바뀔 기술보다 변하지 않는 기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역시 10년 뒤에 무엇이 바뀔지를 묻기보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상욱 교수는 이 관점을 이어받아, 변화의 시대에 알아 두면 쓸데 있는 변치 않을 진실들을 이야기합니다. 책은 크게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됩니다. 자연법칙과 인간 본성, 우리 안에 자리한 욕망과 편향, 미래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역사, 그리고 끊임없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입니다. 이 네 축을 통해 저자는 변화를 이해하는 기준 자체를 제시하려 합니다. 물리학에 에너지 보존 법칙이 있듯이, 세상에도 아무리 뒤집혀도 끝내 보존되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을 찾는 일이야말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열풍에 휩쓸려 매일 새로운 기술을 좇느라 지친 분들이라면, 이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숨통이 트이실 것입니다. 변화를 따라잡으려 애쓰는 대신 변화의 밑바닥에 놓인 상수를 붙드는 편이, 결국 더 멀리 보게 해 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몇 년이면 낡지만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법칙은 좀처럼 낡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자는 물리학의 언어로 차분히 일러 줍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이 책의 매력은 물리학자의 사고방식이 세상을 읽는 도구가 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 역시 원자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자연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물질로 환원해 버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의미도 없는 우주에서 끊임없이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차가운 머리에 따뜻한 가슴을 품은 물리학자라는 평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려면 예술을 알아야 한다는 문장처럼, 과학의 언어로 시작해 삶의 태도로 마무리되는 대목들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다루는 주제가 워낙 넓어,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던 전작들의 밀도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다소 흩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원래 칼럼이었던 만큼 각 글이 독립적이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보다 관심 가는 장부터 골라 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변화의 속도에 멀미가 나는 분들, 무엇을 배워야 할지 막막한 분들, 그리고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제목이 빌려 온 푸시킨의 시처럼, 세상이 우리를 속이는 듯한 날에도 끝내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든든한 위로가 되어 줍니다.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기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끝내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지, 이 책과 함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