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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쓰가루 - 다자이 오사무, 파멸의 작가가 고향에서 되찾은 따뜻함

by 사리이 2026. 7. 26.

쓰가루

 

『인간 실격』의 어두운 작가로만 기억하기 쉽지만,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이토록 밝고 다정한 얼굴도 있었습니다. 그가 고향을 여행하며 쓴 기행소설 『쓰가루』(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1)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파멸의 이미지 너머, 다자이의 또 다른 얼굴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 지방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인간 실격』과 『사양』으로 대표되는 자기혐오와 파멸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실제로 다섯 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생애가 그런 이미지를 굳혀 왔습니다. 그러나 『쓰가루』는 그 통념을 기분 좋게 배반하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1944년, 그가 서른다섯이던 해에 한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고향인 쓰가루 지방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 형식의 작품입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삶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던 무렵에 쓰인 덕분인지 문장 곳곳에 여유와 유머, 그리고 고향과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배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던 작가가 이토록 편안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의 어두운 작품들을 다시 읽게 만듭니다. 민음사는 이 작품을 세계문학전집 471번으로 펴냈는데, 다자이의 대표작만 접했던 독자에게는 이 작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더없이 좋은 통로가 되어 줍니다. 파멸의 작가라는 꼬리표 하나로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일인지를,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웁니다.

 

고향을 걷는 여정,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

『쓰가루』는 작가 자신으로 보이는 화자가 혼슈 최북단의 쓰가루 반도 곳곳을 직접 걸으며 보고 만나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옛 친구들을 찾아가 술잔을 기울이고, 낯선 마을의 풍경과 음식과 사람들의 말투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그 사이사이에 쓰가루 지방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입니다. 지방을 향한 중앙의 편견이나 스스로에 대한 자조를 슬쩍슬쩍 내비치면서도, 그것을 무겁게 끌고 가지 않고 특유의 익살로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의 내면 여행이기도 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고향을 걷는 일은 곧 자신의 뿌리와 유년을 되짚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잣집 막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그가,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고향에서 잊고 있던 정을 하나씩 되찾아 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집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오히려 그 잔잔함이 읽는 이의 마음을 천천히 데워 줍니다. 화려한 서사가 아니라 사람과 풍경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깊이 빠져들 것입니다.

 

다케를 만나러 가는 길, 그 마지막 장면

이 작품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에 있습니다. 여정의 끝에서 화자는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 준 하녀 다케를 찾아 나섭니다. 친부모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대신 채워 준 사람, 어린 그에게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그 사람을 삼십 년 만에 다시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재회하는 장면은, 요란한 감정의 과장 없이 담백하게 그려지는데도 뭉클한 여운을 오래 남깁니다. 그토록 자신을 미워하던 작가가 결국 찾고 있었던 것이 조건 없는 사랑의 기억이었다는 사실이, 이 마지막 장면에서 조용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작품은 강렬한 줄거리나 극적 긴장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고, 쓰가루 지방의 낯선 지명과 역사가 촘촘히 등장해 몰입이 끊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실격』의 어둠에 마음이 짓눌렸던 분이라면, 같은 작가가 이렇게나 온기 어린 글도 남겼다는 사실에서 오히려 위로를 얻으실 것입니다. 한 사람 안에 어둠과 따뜻함이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다정하게 증언합니다. 다자이를 새롭게 만나고 싶은 분들께 권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 조건 없는 온기로 남아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이 책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