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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여행의 감각 — 무과수, 낯선 도시에서 다시 발견한 일상의 감각

by 사리이 2026. 7. 9.

여행의 감각

 

감각적인 사진과 일상 기록으로 사랑받아 온 무과수 작가가 첫 여행 에세이를 펴냈습니다. 다녀와도 남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여행에 지친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 『여행의 감각』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집의 작가 무과수, 이번에는 집을 떠난 자리에서

저자 무과수는 1992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루만질 무 자에 열매 맺는 나무를 뜻하는 과수를 더해 지은 필명에는 가진 재능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쓰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독립출판 『무과수의 기록』 시리즈와 『집다운 집』, 그리고 사계절의 집과 삶의 안부를 물었던 『안녕한, 가』를 펴내며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기록을 꾸준히 이어 온 작가입니다. 에어비앤비 블로그를 운영하며 떠도는 삶을, 오늘의집 에디터로 일하며 머무는 삶을 고찰해 온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은 언제나 공간과 일상이라는 두 축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2026년 6월 위즈덤하우스에서 펴낸 『여행의 감각』은 첫 번째 여행 에세이입니다. 전작 『안녕한, 가』가 집에 뿌리내린 삶의 안부를 물었다면, 이번 책은 집을 떠난 자리에서 다시 발견한 일상의 감각을 기록합니다. 집의 작가가 쓴 여행책이라니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곧 알게 됩니다. 그에게 여행이란 집과 일상을 등지는 일이 아니라, 낯선 도시에 잠시 또 하나의 일상을 지어 보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인 동시에, 무과수가 지금껏 써 온 일상 기록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사진들이 글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함께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핫플레이스 대신 늦잠과 산책, 그리고 시장

감각적인 취향으로 유명한 작가의 여행이라면 특별한 장소와 세련된 맛집의 목록을 기대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런 기대를 기분 좋게 비켜 갑니다. 책장을 펼치면 핫플레이스나 유명 맛집보다 늦잠을 자고 동네를 산책하며 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상의 풍경이 훨씬 자주 등장합니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다시 찾아가고,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하루의 방향을 정하는 사이, 여행은 낯선 도시의 일상으로 천천히 스며듭니다. 저자는 지난 10년 동안 낯선 도시에서 무언가를 많이 해내는 여행 대신 그곳에서 생활해 보는 여행을 이어 왔습니다.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시작해 도쿄와 후쿠오카, 프라하와 샤프베르크, 베를린과 부다페스트, 런던을 지나 밴쿠버와 재스퍼, 밴프, 캘거리까지, 책에 담긴 도시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그가 붙잡는 것은 언제나 비슷합니다. 낯선 곳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생활의 리듬, 별일 없이 흘러간 하루의 밀도 같은 것들입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날의 장면을 일기로 남기는 습관 덕분에, 여행을 하면 흐릿했던 감각이 또렷해지고 사소한 장면 하나까지 붙잡게 되었다는 고백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리한 일정을 잡지 않으니 뭘 했느냐고 물으면 딱히 떠오르지 않아도 하루가 별로였던 적은 없었다는 문장에서는, 관광지 목록을 채우듯 다니느라 정작 지쳐서 돌아오곤 했던 제 여행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갔는가보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가

이 책이 조용히 되묻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어디를 다녀왔는가가 아니라 어떤 하루를 보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유명한 건축물 앞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숙소로 돌아오던 길의 밤공기이고, 꼭 가야 한다던 식당보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여행지에서 흔히 지나치는 장면들을 다시 붙잡습니다. 비가 그친 뒤 피어오르는 흙과 나무의 향,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의 조각, 시장에서 사 온 재료로 차려 먹은 한 끼 같은 감각들이 낯선 도시의 하루를 다시 떠올리고 싶은 장면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은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일이라는 대목, 그리고 좋은 습관이 있으면 어디에서든 기복 없는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책이 단지 여행 이야기가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여행지에서 좋은 하루를 보내는 법은 일상에서 좋은 하루를 사는 법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더 멀리, 더 자주 떠나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든 하루를 나답게 보내는 것만으로 오래 남는 기억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줄 뿐입니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내려놓으면 모든 순간이 여행이 된다는 말을, 저는 이 여름의 문장으로 오래 간직하려 합니다. 여행을 앞두고 계신 분은 물론, 당장 떠날 수 없는 분들께도 지금 이곳의 하루를 여행처럼 살게 해 줄 책이니 꼭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이 책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