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밤새 붙들었던 그 게임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현역 개발자가 쓴 『일본 게임의 역사』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스와 천외마경을 만든 개발자가 쓴 역사서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의 이력에 있습니다. 이와사키 히로마사는 게임 저널리스트나 학자가 아니라, 일본 게임의 황금기를 직접 만들어 온 현역 개발자입니다. 그의 대표작을 보면 왜 이 책에 기대를 걸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니혼 팔콤의 액션 RPG 명작 『이스 I·II』, 허드슨의 대작 RPG 『천외마경』, 그리고 『에메랄드 드래곤』과 『린다 큐브』까지,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특히 『이스』 시리즈는 한국과 일본의 열성적인 팬들의 응원 속에 지금까지도 신작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 계보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 직접 쓴 역사서라는 사실만으로 이 책의 무게는 남다릅니다. 실제로 이 책은 일본의 프로 게이머들이 게임의 본질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세 권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며 현지에서 먼저 인정받았습니다. 국내에는 2026년 5월 텀블벅 펀딩을 거쳐 6월부터 전국 서점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원서와 달리 레트로 감성을 살린 표지로 새롭게 단장해 소장 욕구를 한껏 자극합니다. 제목이 말해 주듯 1972년부터 2026년까지, 무려 반세기를 아우르는 연대기입니다. 만든 사람이 직접 쓴 기록이라는 점에서, 바깥에서 관찰한 역사서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50년의 일본 비디오 게임 연대기라는 소개 문구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온라인 게임까지, 50년의 전환점들
이 책은 일본 비디오 게임의 탄생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진화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는 구성을 취합니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에서 출발해 최신 온라인 게임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주요 전환점들을 빠짐없이 짚어 나가는 것입니다. 1972년이라는 출발점은 상징적입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산업이 막 걸음마를 떼던 그 시절, 일본은 타이토와 남코를 앞세워 아케이드 시장에 뛰어들었고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이후 화투 회사였던 닌텐도가 패미컴으로 가정용 콘솔 시장을 장악하고,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 『파이널 판타지』 같은 오늘날의 고전들이 연이어 태어났으며, 세가와 소니의 참전으로 콘솔 전쟁이 벌어지고, 이윽고 온라인과 모바일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의 흐름이 한 권에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개발자의 시선입니다. 어떤 기술적 제약 속에서 그 게임들이 만들어졌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쓴 서술이기에, 단순한 연표 나열과는 밀도가 다릅니다. 고전 게임을 사랑하는 레트로 게이머와 수집가들이 반색할 정보가 곳곳에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특정 기종의 흥망이나 잊힌 회사들의 사연처럼,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정리된 형태로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한 권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장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게임을 좋아했던 모든 사람을 위한 타임머신
이 책을 읽는 경험은 어떤 면에서 타임머신을 타는 일에 가깝습니다. 동전을 쌓아 두고 순서를 기다리던 오락실의 소음, 카트리지에 입김을 불어 넣던 습관, 잡지 부록을 뒤적이며 다음 신작을 기다리던 마음까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잊고 있던 장면들이 함께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어떻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덤입니다. 다만 이 책은 대중 교양서라기보다 마니아를 위한 자료집에 가깝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립니다. 등장하는 회사와 기종, 타이틀의 수가 방대해 게임에 관심이 없는 분에게는 낯선 고유명사의 나열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 게임 중심의 서술이므로 서구 게임사나 한국 게임사를 함께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좁고 깊은 시선이야말로 이 책의 정체성입니다. 패미컴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유년을 보낸 분들, 좋아하는 게임이 어떤 맥락에서 태어났는지 알고 싶은 분들, 그리고 게임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진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반세기의 기록을 곁에 두는 일은,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꽤 근사한 자부심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제 게임은 명백히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이며, 그 역사를 아는 일은 영화사나 음악사를 아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옛 게임기를 꺼내 먼지를 털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게임은 이 연대기의 어느 해에 놓여 있는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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