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인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면, 우리는 정말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문단과 대중 양쪽의 사랑을 받는 작가 구병모의 장편소설 『절창』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 작가, 구병모
저자 구병모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소설가입니다. 열두 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꾸다 편집자로 일하며 꾸준히 글을 쓴 끝에 등단한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치 않은,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작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편소설 『파과』로 단단한 서사 장악력을, 『네 이웃의 식탁』으로 시대를 감지하는 예리한 시선을, 『상아의 문으로』로 심원한 문학적 상상력을 증명해 왔고,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과 『있을 법한 모든 것』으로 한계 없는 사유의 폭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파과』는 전 세계 십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책 100선에 오르는 한편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의작가상과 김유정문학상, 그리고 한국문학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실험 정신을 기준으로 삼는 김현문학패까지 수상하며, 그는 문단과 대중 양쪽에서 공고한 지지를 받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런 그가 2026년 1월 문학동네에서 펴낸 신작이 바로 『절창』입니다. 어느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든 만족시킬 만하다는 평처럼, 그의 드넓은 문학적 영토가 한 권에 응축된 작품입니다.
상처를 읽는 소녀,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는 선생님
제목인 절창(切創)은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를 뜻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누군가의 깊은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자신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능력을 지닌 여성입니다. 보육원에서 다친 친구의 출혈을 멈추려 상처를 누른 순간, 친구의 생각이 통째로 입력되는 경험을 하면서 그 능력이 처음 드러납니다. 우연히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사업가 문오언은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삶을 주고, 신전 같은 저택에 그녀를 숨긴 채 그 능력을 사업에 이용합니다. 세상과 단절된 그녀가 바깥과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는 저택을 가득 채운 책이었고, 그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입주 독서 교사로 이 소설의 화자인 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이 모든 일을 진술하는 듯한 시점과, 아가씨라 불리는 그녀의 고백을 들어주는 선생님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상처를 읽는 소녀와 그 소녀를 읽으려는 선생님,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사업가의 관계가 팽팽한 긴장 속에 얽혀 듭니다. 구병모 특유의 서늘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이 기묘한 설정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설득해 냅니다.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타인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깊습니다. 상처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직접 읽는다 해도, 과연 우리는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평생 수많은 책을 읽어 온 독서 교사조차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기 어렵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이 작품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타인이란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영원한 텍스트라는 것입니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라는 이 소설의 문장처럼, 서로에게 낸 상처를 통해서만 겨우 가까워지는 관계의 역설을 작가는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언어로 쉽사리 정의할 수 없는 기이한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행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만 이 작품은 명확한 사건과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사변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상징과 은유의 밀도가 높아 한 번에 술술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분이라면, 오래 곱씹을 여운을 얻으실 것입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의 어려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마주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읽을 수 있고 또 얼마나 오독하고 있는지, 이 책과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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