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책 추천 | 주와 연 — 청예, 저주와 인연이 맞물린 우로보로스

by 사리이 2026. 7. 21.

주와 연

 

아버지의 불륜을 단죄하기 위해, 그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되어 돌아온 소녀가 있습니다. 지금 가장 뜨거운 젊은 작가 청예의 신작 장편소설 『주와 연』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 청예

저자 청예는 본명이 김수진인 데뷔 5년 차 소설가입니다. 2021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우수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의 이력이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컴투스 글로벌 콘텐츠문학상 최우수상, K-스토리 공모전 2회 연속 최우수상, 그리고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까지 각종 공모전을 휩쓸며 단숨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수빈이가 되고 싶어』와 『수호신』, 『오렌지와 빵칼』 같은 장르문학은 물론, 한겨레출판의 『낭만 사랑니』와 창비의 『일억 번째 여름』, 열림원의 『반 고흐의 마지막 획』까지 순문학 출판사로도 활동 반경을 넓히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3년 연속 예스24의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후보에 오른 것도 그 인기를 증명합니다. 그런 그가 2026년 6월 24일 래빗홀에서 펴낸 신작이 바로 『주와 연』입니다. 출간 직후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 소설 부문 상위권에 오르고 리뷰 평점 9.9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소설이 2~3년 전에 이미 완성되었으나 저주와 자살, 불륜이라는 소재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는 것입니다. 작가 스스로 거절당했지만 기어코 세상에 나온 원고라고 표현했으니, 그 사연을 알고 읽으면 한층 애틋해집니다. 껄끄럽다는 이유로 밀려났던 이야기가 결국 독자들의 열띤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열일곱 오주희, 아버지와 불륜녀의 딸로 환생하다

이야기의 출발은 강렬합니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 오주희는 아버지의 외도로 가정이 파탄 난 뒤, 무당이 쥐여 준 부적 한 장을 들고 아버지의 불륜 상대를 찾아갑니다. 짧은 만남에서 필요한 것을 얻은 그는 주저 없이 옥상에서 몸을 던집니다. 그리고 얼마 뒤 세상에 다시 머리를 내밉니다. 길일인 새천년 첫날을 몇 초 앞둔 1999년 12월 31일, 아버지와 불륜녀 사이에서 태어난 딸 오연린으로 말입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이들의 딸이 되어 그들 곁에서 복수를 시작한다는 설정은, 회귀와 빙의와 환생이라는 요즘의 문법을 오컬트 미스터리로 끌어들인 대담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통쾌한 복수극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성장한 연린은 자신과 닮은 인물 박은정을 만나면서, 복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증오와 사랑, 죽음과 환생,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이야기로 서사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소설의 앞부분은 과거에 쓰던 흐름이고 뒷부분은 지금의 스타일이라 과거의 호기로운 청예와 현재의 성숙한 청예가 섞여 있다는 작가의 설명은, 이 작품의 결이 왜 그토록 독특한지를 잘 알려 줍니다. 초반의 거침없는 속도로 독자를 사로잡은 뒤 후반에 이르러 전혀 다른 깊이를 보여 주는 구조 덕분에,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의 온도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연 복수는 완성될 것인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남을 것인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혈연은 울타리인가, 족쇄인가

제목인 주와 연에는 두 겹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주희와 연린, 두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온 것입니다. 동시에 한자로는 저주와 인연을 뜻합니다. 표지에 새겨진 呪와 緣 사이의 무한대 기호가 이 관계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 줍니다. 소설가 이희주가 이 작품을 두고 저주와 인연의 우로보로스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자기 꼬리를 삼키는 뱀처럼, 저주가 인연이 되고 인연이 다시 저주가 되어 끝없이 맞물리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특히 혈연에 주목합니다. 이 소설에서 혈연은 인물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구속하는 족쇄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주희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혈연을 끝내 끊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복수의 대상으로 삼는데, 그 집착이야말로 그를 파괴하는 근원입니다. 누구와 인연을 맺고 어떤 관계를 붙잡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지며, 때로는 그 인연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통쾌한 응징극을 기대하고 펼쳤다가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안고 책장을 덮게 되는 소설이니, 강렬하고 서늘한 이야기를 찾는 분들께 권합니다. 다만 자살과 불륜 묘사가 직접적인 만큼,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펼치시기를 함께 당부드립니다. 그럼에도 올여름 가장 인상적인 한국 소설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책을 들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인연은 울타리인지 족쇄인지, 이 책과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