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단 한 가지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를 견디고 살아 돌아온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우슈비츠를 통과한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저자 빅터 프랭클은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정신의학자이자 신경학자입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빈 정신치료 제3학파로 불리는 로고테라피, 곧 의미치료를 창시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학문적 업적 이전에 그가 통과한 삶 자체였습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네 곳의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혔고, 그곳에서 아내와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고통과 상실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것입니다. 이 책은 그가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심리학자의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수기이자, 그 관찰에서 길어 올린 의미치료의 핵심을 담은 저작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단 9일 만에 이 원고의 초고를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부가 팔리며 20세기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 의회도서관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고통을 겪은 사람이 그 고통을 어떻게 의미로 바꾸어 내는가를, 이보다 설득력 있게 증언하는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남는 마지막 자유
이 책의 전반부는 수용소 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서늘한 기록입니다. 프랭클은 수용소에 들어선 첫 충격의 순간부터, 모든 감정이 마비되어 가는 무감각의 단계, 그리고 해방 이후의 심리까지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관찰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인간을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어떤 이는 짐승처럼 변했지만, 또 어떤 이는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나누며 성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이 책의 가장 유명한 통찰에 이릅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만은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지킬 것인지 무너질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이 통찰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 놓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에 응답하는 태도가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 그것이 그가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발견한 진실이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견딘다
이 책의 후반부는 그 경험에서 태어난 의미치료의 핵심을 설명하는 데 할애됩니다. 프랭클은 니체의 말을 빌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어떻게든 견뎌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대개 신체가 가장 강건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나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처럼 살아야 할 의미를 품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기대하기보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관점의 전환이야말로 이 책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온 이유일 것입니다. 다만 후반부의 이론적 서술은 전반부의 생생한 수기에 비해 다소 학술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짧은 분량 안에 깊은 사유가 압축되어 있어 한 번에 다 소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지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이 건네는 목소리가 각별한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고통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어도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언제나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 단순하고도 단단한 진실을 이 책은 온몸으로 증언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이 지금 여러분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이 책과 함께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지금이 그 물음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시기라면, 언제든 곁의 누군가에게 혹은 109번에 마음을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