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책 추천 | 투명한 나선 - 히가시노 게이고, 유가와 마나부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순간

by 사리이 2026. 7. 25.

투명한 나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이야기가 마침내 국내에 도착했습니다. 언제나 냉정했던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투명한 나선』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통산 2천만 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이야기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을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다,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스물일곱에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을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이야기꾼으로 자리 잡았고, 2014년에는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학원물에서 추리와 서스펜스, 에세이까지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는 그의 다작 이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라 할 만합니다. 『투명한 나선』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계보인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는 형사 구사나기 슌페이가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풀어 가는 구조로, 드라마와 영화로 거듭 만들어지며 통산 2천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에서는 2021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3월 『침묵의 퍼레이드』에 이어 이번에 소개되면서, 오래 기다려 온 국내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되었습니다. 출간을 기념해 서점가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전이 열릴 만큼 관심이 뜨거운데, 시리즈를 처음부터 따라온 독자들에게는 몇 년을 기다린 끝에 받아 든 선물 같은 책일 것입니다. 전자책으로도 함께 나와 있어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는 점도 반갑습니다.

 

바다에서 발견된 시신, 그리고 사라진 여자

이야기는 바다에서 발견된 한 구의 시신에서 시작됩니다. 신원이 밝혀지고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피해자와 함께 살던 여성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구사나기와 우쓰미 가오루가 이끄는 수사는 사라진 여자의 행방을 좇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파고들수록 사건은 단순한 실종과 살인의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시리즈의 다른 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늘 사건 바깥에 서서 냉정한 관찰자로 존재하던 유가와가, 이번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영역과 맞닿은 자리에서 사건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논리와 물리 법칙으로만 세상을 설명해 온 그가 좀처럼 보여 주지 않던 표정을 드러내는 순간들은, 오랜 독자일수록 더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결말과 직결되므로 아껴 두겠습니다만, 시리즈를 따라온 분이라면 유가와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되는 경험을 하시게 되리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처음에 세워 두었던 짐작이 계속 흔들리는데, 그 흔들림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이 작가의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일 것입니다. 이야기의 속도 역시 시원시원해서, 한번 붙들면 밤을 넘기기 쉽습니다. 늘 논리로 무장한 채 감정을 뒤로 물려 두던 인물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잘 아는 사람의 뜻밖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낯설고도 뭉클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어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제목의 나선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면 이 작품의 주제가 어렴풋이 잡힙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끊어지지 않게 이어 두는 것,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물려받고 물려주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늘 그렇듯 이 작품 역시 트릭의 정교함보다 그 트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사정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누가 죽였는가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끝까지 따라가고, 마지막에 이르러 범인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그 특유의 마무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다만 이 작품은 화려한 물리 트릭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고, 시리즈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첫 책으로 집어 들기에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오는 감흥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용의자 X의 헌신』과 『침묵의 퍼레이드』를 먼저 읽고 오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순서를 밟아 이 책에 도착한 독자에게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매듭이 조용히 풀리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에 서늘한 이야기 한 편이 필요한 분들, 그리고 잘 짜인 미스터리 너머의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께 권합니다. 오래된 시리즈가 여전히 새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이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나선은 무엇인지, 이 책과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