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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 파김치 만화 클럽 — 허안나, 함께 읽고 함께 그리는 시간의 기록

by 사리이 2026. 7. 9.

파김치 만화 클럽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마침내 각자의 만화를 그려 내는 워크숍이 있습니다. 만화가 허안나, 필명 파김치 작가의 『파김치 만화 클럽』을 읽고, 이 다정한 책이 건네는 초대장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만화가 허안나, 그리고 부캐 파김치

저자 허안나는 2006년 웹툰 「인생은 꿈맛」으로 활동을 시작해, 2011년 첫 저서 『도쿄는 꿈맛』을 펴낸 이래 20년 가까이 꾸준히 만화를 그려 온 작가입니다. 요즘은 본명보다 부캐인 파김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수영일기」, 「분홍코 가족」, 「라마카페」, 「남미 요양기」, 『파김치의 쭈글쭈글한 일기장』 등 삶의 결을 그대로 옮긴 일상 만화들을 연재하고 출간해 왔으며, 1인 출판 레이블인 라마북스를 운영하며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열네 살이 된 턱시도 고양이 남매 잼잼이, 곤지와 함께 살며 고양이들을 인생의 전환점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애묘인이기도 합니다. 생계를 위해 잠시 만화를 접고 직장 생활을 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펜을 잡은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만화는 직업이기 이전에 삶을 지탱하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만화가 대단히 화려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지루한 일상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한 컷, 대사 한 줄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는 말과, 만화 그리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고백은 이 작가가 만화를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파김치 만화 클럽』은 바로 그런 사람이 만든, 만화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책입니다. 그동안 그의 책 상당수가 소량 독립출판으로만 나와 구하기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책을 서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랜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라 하겠습니다.

 

함께 읽고, 수다 떨고, 끝내 그리게 되는 워크숍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파김치 만화 클럽, 줄여서 파만클은 작가가 직접 꾸려 온 모임형 워크숍의 이름입니다. 방식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작가가 선정한 만화를 참가자들이 미리 읽어 오고, 모여서 감상을 나누며 실컷 만화 수다를 떤 뒤, 주제를 정해 각자 자신의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4주에서 5주가량 진행되는 한 기수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그린 만화를 전부 모아 모음집을 만들어 나눠 갖습니다. 독서 모임과 창작 수업과 소규모 출판이 한 몸에 담긴 셈입니다. 기수를 거듭하며 이어져 온 이 클럽에 대해 작가는 참가자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청난 영감과 힐링이 되는 시간이며, 힘이 닿는 한 영원히 지속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애정의 결실로, 클럽에서 보낸 시간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 에세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좋아하는 만화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들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림에 자신 없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컷을 완성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파김치 특유의 꾸밈없는 그림체로 전해집니다. 읽는 내내 나도 이 클럽의 구석 자리에 앉아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온기가 도는 책이었습니다. 어떤 만화를 왜 함께 읽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만화 추천 목록이 되어 주니, 읽고 싶은 만화가 잔뜩 쌓이는 부작용은 감수하셔야 합니다.

 

읽는 사람에서 그리는 사람으로, 다정한 초대장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만화를 감상의 대상에서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일로 바꿔 놓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만화를 사랑하면서도 그리는 일만큼은 재능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 여기며 선을 긋곤 합니다. 그러나 파만클의 시간은 그 선이 생각보다 흐릿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만화의 시작이며, 삐뚤빼뚤한 선에도 그 사람만의 리듬과 유머가 담긴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장면으로 증명해 냅니다. 함께 읽고 함께 그리는 공동체가 창작을 얼마나 덜 외롭게 만들어 주는지도 이 책의 중요한 발견입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이 곁에 사람이 있으면 어느새 완성되어 있고, 서로의 모음집이 서로의 용기가 되어 줍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소비에서 창작으로, 혼자에서 함께로 확장될 때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만화 애호가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오래 좋아해 온 것이 있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지 못한 모든 사람을 위한 초대장입니다. 읽고 나면 서랍 속 펜을 꺼내 네 컷짜리 오늘의 일기를 그려 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분, 그리고 싶었지만 망설여 온 분,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동료가 그리운 분, 그리고 자기만의 모임을 꾸려 보고 싶은 분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언젠가 파만클의 새 기수가 열린다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네 컷 만화로 그린다면 어떤 장면을 담고 싶으신지, 이 책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