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마침내 각자의 만화를 그려 내는 워크숍이 있습니다. 만화가 허안나, 필명 파김치 작가의 『파김치 만화 클럽』을 읽고, 이 다정한 책이 건네는 초대장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만화가 허안나, 그리고 부캐 파김치
저자 허안나는 2006년 웹툰 「인생은 꿈맛」으로 활동을 시작해, 2011년 첫 저서 『도쿄는 꿈맛』을 펴낸 이래 20년 가까이 꾸준히 만화를 그려 온 작가입니다. 요즘은 본명보다 부캐인 파김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 「수영일기」, 「분홍코 가족」, 「라마카페」, 「남미 요양기」, 『파김치의 쭈글쭈글한 일기장』 등 삶의 결을 그대로 옮긴 일상 만화들을 연재하고 출간해 왔으며, 1인 출판 레이블인 라마북스를 운영하며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열네 살이 된 턱시도 고양이 남매 잼잼이, 곤지와 함께 살며 고양이들을 인생의 전환점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애묘인이기도 합니다. 생계를 위해 잠시 만화를 접고 직장 생활을 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펜을 잡은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만화는 직업이기 이전에 삶을 지탱하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만화가 대단히 화려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지루한 일상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한 컷, 대사 한 줄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는 말과, 만화 그리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고백은 이 작가가 만화를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 줍니다. 『파김치 만화 클럽』은 바로 그런 사람이 만든, 만화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책입니다. 그동안 그의 책 상당수가 소량 독립출판으로만 나와 구하기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책을 서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랜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라 하겠습니다.
함께 읽고, 수다 떨고, 끝내 그리게 되는 워크숍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파김치 만화 클럽, 줄여서 파만클은 작가가 직접 꾸려 온 모임형 워크숍의 이름입니다. 방식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작가가 선정한 만화를 참가자들이 미리 읽어 오고, 모여서 감상을 나누며 실컷 만화 수다를 떤 뒤, 주제를 정해 각자 자신의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4주에서 5주가량 진행되는 한 기수가 끝나면 참가자들이 그린 만화를 전부 모아 모음집을 만들어 나눠 갖습니다. 독서 모임과 창작 수업과 소규모 출판이 한 몸에 담긴 셈입니다. 기수를 거듭하며 이어져 온 이 클럽에 대해 작가는 참가자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청난 영감과 힐링이 되는 시간이며, 힘이 닿는 한 영원히 지속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애정의 결실로, 클럽에서 보낸 시간과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 에세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좋아하는 만화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들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림에 자신 없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컷을 완성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가 파김치 특유의 꾸밈없는 그림체로 전해집니다. 읽는 내내 나도 이 클럽의 구석 자리에 앉아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온기가 도는 책이었습니다. 어떤 만화를 왜 함께 읽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만화 추천 목록이 되어 주니, 읽고 싶은 만화가 잔뜩 쌓이는 부작용은 감수하셔야 합니다.
읽는 사람에서 그리는 사람으로, 다정한 초대장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만화를 감상의 대상에서 누구나 해 볼 수 있는 일로 바꿔 놓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만화를 사랑하면서도 그리는 일만큼은 재능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 여기며 선을 긋곤 합니다. 그러나 파만클의 시간은 그 선이 생각보다 흐릿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만화의 시작이며, 삐뚤빼뚤한 선에도 그 사람만의 리듬과 유머가 담긴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장면으로 증명해 냅니다. 함께 읽고 함께 그리는 공동체가 창작을 얼마나 덜 외롭게 만들어 주는지도 이 책의 중요한 발견입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이 곁에 사람이 있으면 어느새 완성되어 있고, 서로의 모음집이 서로의 용기가 되어 줍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소비에서 창작으로, 혼자에서 함께로 확장될 때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만화 애호가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오래 좋아해 온 것이 있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지 못한 모든 사람을 위한 초대장입니다. 읽고 나면 서랍 속 펜을 꺼내 네 컷짜리 오늘의 일기를 그려 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분, 그리고 싶었지만 망설여 온 분,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동료가 그리운 분, 그리고 자기만의 모임을 꾸려 보고 싶은 분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언젠가 파만클의 새 기수가 열린다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네 컷 만화로 그린다면 어떤 장면을 담고 싶으신지, 이 책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