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를 왜 보느냐고, 성해나의 책을 보면 된다고 했던 배우 박정민의 추천사가 화제가 되었던 책이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미래로 꼽히는 성해나의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를 읽고 그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금 가장 뜨거운 이름, 소설가 성해나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입니다.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과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펴냈고, 2024년에는 「혼모노」로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과 젊은작가상을, 2025년에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로 다시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만중문학상 신인상과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까지 연달아 품에 안았고,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뽑은 '20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에 선정되며 화제성까지 증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2025년 창비에서 펴낸 두 번째 소설집이 바로 이 『혼모노』입니다. 총 일곱 편의 단편이 368쪽에 묶여 있으며, 작품마다 치밀한 취재와 정교한 구성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인물과 서늘한 서사를 빚어내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열어 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소설가 이기호는 이 책을 두고 작가의 신명이라 부를 만하다 했고, 배우 박정민은 질투 나는 재능이라며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들로 가득하다고 상찬했습니다. 두 사람의 추천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저는 첫 단편 몇 쪽 만에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소설가는 소재를 찾아 떠도는 존재 같지만 실은 소재가 스스로 작가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해설의 표현처럼, 이 소설집은 그렇게 찾아온 손님들을 성실하고 치열하게 응대한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 링 위에 오른 사람들
표제작 「혼모노」는 30년 차 박수무당 문수와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무당 신애기의 대립을 그립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수할멈을 모셔 온 중년의 문수는 어느 날 자신에게서 할멈이 떠나가 더 이상 신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때마침 앞집으로 이사 온 신애기는 할멈이 자신에게 왔다고 말하고, 문수의 눈에는 그 젊은 무당이 마치 할멈과 하나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당으로서 자신이 진짜라고 믿어 온 문수의 믿음이 그 근간부터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이 소설집의 매력은 이렇게 대비되는 인물들을 하나의 링 위에 올려 정면으로 충돌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이는 누구인가를 추적 다큐멘터리처럼 다룬 팩션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원정 출산을 앞두고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적나라한 욕망의 다툼을 벌이는 「잉태기」, 지역 재생 스타트업 직원들과 귀촌한 이들이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게 되는 「우호적 감정」, 고등학교 시절 메탈 밴드를 함께했던 세 친구가 현실과 마주하는 「메탈」까지, 소재는 제각각이지만 인물들이 부딪치는 순간마다 불꽃이 튑니다. 소설이 다루는 것은 건축이나 영화나 음악이 아니라, 결국 그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의 누추한 상처입니다. 우상을 향한 팬심과 죄책감이 뒤엉키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처럼, 요즘의 우리가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감정들을 정확히 포착해 내는 감각도 놀라웠습니다.
진짜는 구의 앞뒤와 같아서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합니다. 일곱 편의 단편은 모두 이 진짜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관통하지만, 성해나는 결코 매끈한 정답을 길어 올리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질을 가장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이 진짜인지, 작가는 끝내 답하지 않습니다. 진짜와 가짜는 구의 앞뒤 같은 것이어서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경계가 변하고, 진짜였던 것이 가짜가 되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세대 갈등을 손쉽게 무마하지 않으려는 정직한 태도, 인위적인 도덕을 가차 없이 벗겨 내는 담대함, 온기에 속지 않으려는 치열함이 이 소설집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도파민 가득한 오락물을 기대하고 펼쳤다가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다는 어느 독자의 후기가 이 책의 성격을 정확히 말해 줍니다. 한번 펼치면 멈추기 어려운 흡입력을 지녔지만, 다 읽고 나면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 소설이 궁금한 분들, 강렬하고 서늘한 이야기를 찾는 분들,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가 된 분들에게 이 책을 힘껏 권합니다. 단편집이라 한 편씩 끊어 읽기에도 좋지만, 아마 그러기는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손이 저절로 다음 장을 넘기게 될 테니 말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진짜라고 믿어 온 것은 정말로 진짜인지, 이 책과 함께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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